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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이상적인 반숙의 조건을 탐하다

Jadam | 201808

달걀을 삶는다. 노른자는 촉촉하길, 흰자는 보드랍길, 겉껍질은 한번에 잘 벗겨지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 하지만 오늘도 원하는 만큼의 반숙은 나오질 않는다. 노른자와 흰자 사이에서 이상적인 반숙의 조건을 탐구해본다.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달걀 삶기 실험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운동에너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살다보니 형광등 색 온도(주광색, 주백색 등)가 우리 눈과 집안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 전기드릴을 이용해 수직으로 못 박기, 흰자는 보들보들하고 노른자는 촉촉한, 정말 맛있는 반숙 달걀을 만들기 위한 물과 열의 관계가 더 궁금하고 필요했다는 말이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MIT 출신 공학도이자 자칭 너드(nerd)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이자 요리 기고가인 J. 켄지 로페즈 알트. 그도 우리처럼 궁금했다고 한다. 달걀을 삶을 때 몇 분이나 삶아야 노른자가 완벽하게 익는 완숙인지, 혹은 노른자가 촉촉한 반숙인지 말이다. 그와 우리가 달랐던 건, 켄지는 자신이 궁금해 한 모든 것에 대해 실험하고 탐구하고 연구를 거듭했다는 점, 그리고 두 손으로 받치고도 끙 소리를 내며 들어야 할 무게 (960쪽, 1,824g)의 책으로 펴냈다는 점이다.

<THE FOOD LAB 더 푸드 랩> (J. 켄지 로페즈 알트 지음, 영진닷컴 펴냄)에는 ‘더 나은 요리를 위한 주방 과학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앞으로 살아갈 무수히 많은 날들 동안 맛있는 반숙 달걀을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해 그를 따라 해보기로 했다. 일명, 가장 맛있는 반숙을 위한 ‘자담큰만의 쿠킹랩’.

 

[달걀 삶기에 동원된 이 많은 준비물들!]

 

세상에는 달걀을 삶는 여러 팁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달걀을 찬물에 넣어 삶으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끓고 있는 물에 집어넣으라고 한다. 냄비 뚜껑을 덮어라, 덮지 마라, 달걀 삶는 물에 소금이나 식초 혹은 베이킹 소다를 넣어라 등등. <더 푸드 랩>의 저자가 직접 실험해본 바에 따르면 달걀을 삶을 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시간과 온도였다.

준비물은 달걀 15알, 달걀이 모두 들어갈 만큼 크고 뚜껑이 있는 냄비와 물. 먼저 냄비에 대략 달걀 높이의 곱절쯤 되는 물을 붓고 센 불에서 끓였다.

 

 

[과학시간보다 더 진지한 반숙 실험.]

 

물이 팔팔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달걀 14알을 넣고 1분에 하나씩 꺼내 상태를 살폈다. <더 푸드 랩>에서는 물이 끓으면 불을 끈 다음 달걀들을 넣고 30초마다 꺼내는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그렇게 촘촘히 진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시간은 1분마다로 늘려 잡았다.

결과는? 1분마다 꺼내 반을 가른 달걀을 모아 놓자 르네상스 회화 못지않은 근사한 작품이 탄생했다. 일명, 반숙의 모든 것. 달걀이 이렇게 익어가는구나!

 

[1분 간격으로 삶아지는 달걀의 모습.]

 

  • 첫 번째 줄 맨 왼쪽에 놓인 건 날달걀이다. 날달걀을 팔팔 끓는 물에 넣고 1분이 지나면 그 오른쪽 옆 달걀 상태가 된다. 투명했던 흰자가 불투명한 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2분, 흰자는 불투명하지만 완전히 굳지 않았고, 노른자 쪽은 거의 굳지 않았다. 껍질을 벗기면 바깥쪽 흰자는 모양을 유지할 만큼 굳어 있다.
  • 3분, 투명한 액체 상태의 흰자가 거의 불투명한 고체 상태의 흰색으로 변했다. 껍질을 까서 흰자를 눌러보니 말랑하다. 귀엽다. 노른자 옆은 아직도 조금 반투명한 상태. 노른자가 살짝 따뜻하긴 해도 완전히 날 것이다.
  • 4분, 열이 흰자를 지나 노른자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액체 노른자가 걸쭉 해지기 시작한다.
  • 5분, 노른자는 아직 반투명 상태다.
  • 6분, 흰자는 거의 익어 완숙 달걀만큼 단단해졌고, 노른자 가운데는 황금색의 액체 상태이지만 가장자리가 굳기 시작했다. 노른자는 모양이 잡혀 칼이나 포크로 자를 수 있을 정도다.
  • 7~8분, 풀무원의 반숙계란 제품 ‘촉촉란’의 노른자와 가장 비슷한 상태. 촉촉한 노른자에 후추와 바질 가루를 살짝 뿌려 먹고 싶어진다.
  • 9분, 노른자에서 수분이 날아가고 있는 게 보인다. 노른자가 부서지기 시작한다.
  • 10분, 흰자와 노른자의 경계 중심으로부터 시작된 연한 노란색이 점점 중앙을 향하고 있다. 완숙이 목표라면,9~10분 정도 익히면 달걀 좀 삶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 11분, 노른자가 완전히 익었다. 흰자가 점점 더 단단하고 더 건조해진다.
  • 15분, 노른자 주변이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흰자 속 황이 노른자 속 철과 반응해 황화철을 만들어낸 것. 너무 익었다는 증거다.
  • 맨 마지막은 20분 이상 삶은 달걀. 흰자는 뻣뻣하고 노른자는 퍽퍽하다. 아무리 완숙이 목표라도 이렇게 삶으면 실패.

 

[잘못 삶으면 흰자가 벗겨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노른자는 반숙, 흰자는 수란이라니!]

 

달걀 삶기 실험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반숙은 더 어려웠다. 달걀 흰자와 노른자가 익는 온도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흰자와 노른자가 익는 온도 차이에 균형을 맞춰주는 게 중요한데 쉽지 않았다. 풀무원 반숙계란 ‘촉촉란’처럼 흰자가 보들보들하려면 3분에서 멈춰야 하지만 촉촉한 노른자를 위해선 4분 30초쯤 더 삶아야 한다. 3분과 7분 30초, 이 사이에는 어떤 마법 같은 시공간이 존재하는 걸까.

 

얼마 전 새로 나온 ‘풀무원 컵라면에 잘 익는 반숙 달걀’은 홈메이드로 만들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컵라면에 달걀을 넣어 먹을 때 좋은 최적의 가열 온도와 시간을 찾아내어 노른자는 촉촉한 반숙 형태를 띠면서 흰자는 적당히 익은 수란의 물성을 유지하도록 했다니, 놀라운 과학의 힘! 이 녀석은 집에서 만들어먹을 생각일랑 하지 말고 반드시 편의점에서 사먹도록.

 

 

실험 결과,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최상의 달걀 반숙은 물이 팔팔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달걀을 넣고 7~8분만 익히기. 물론 이 시간은 부엌의 온도와 조리기구의 열 보존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밝혀둔다. 그러니, 마음에 쏙 드는 반숙 달걀을 만들고 싶다면 열심히 실력을 연마할 것. 새삼, 그동안 무심히 먹었던 풀무원 반숙계란 ‘촉촉란’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CREDIT

<자연을담는큰그릇> 편집실

사진톤 스튜디오

요리&스타일링그린테이블

참고도서<더 푸드 랩 : 더 나은 요리를 위한 주방 과학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