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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아키노리의 기적의 사과, 흙이 답이다 <흙의 학교>

Jadam | 201503

약이라도 탄 것처럼 맛있는 사과가 일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판매 개시 3분 만에 품절, 이 사과로 만든 수프를 파는 레스토랑은 반년 후까지 예약 완료. 심지어 썩지도 않는다. 이 책은 ‘기적의 사과’를 길러낸 일본의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 씨가 선생으로 섬기는 ‘흙’에 대한 이야기다.

 

흙의학교_표지입체

 

오직 자연의 힘만으로
농사는 나의 로망이었다. 귀농은 힘드니 귀촌이라도, 아니 우선 주말농장에서 텃밭부터 가꿔볼까 하다가도 문득 ‘있는 화분도 다 말려 죽이는 주제에 무슨’ 하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졌다. ‘내 고향 흙냄새’ 하면 황사가 떠오르는 서울내기는 게으르고 실행력이 약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농사를 글로 배우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농업에 관한 이런저런 책을 보던 어느 날 ‘자연재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 것도 인위적으로 주지 않고 오직 자연의 힘만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것’. 무릎을 치며 이거다 싶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니, 게으르고 무지한 사람에게 최상의 농법이 아닌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을 탄 것처럼 맛있는 사과
흔히 중독성이 느껴질 정도로 맛있는 것을 접했을 때 우스갯소리로 “약을 탄 것 아니냐”는 표현을 한다. 정말 약이라도 탄 것처럼 맛있는 사과가 일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판매 개시 3분 만에 품절이 되고 이 사과로 수프를 만들어 파는 레스토랑은 반년 후까지의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이 사과는 썩지도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사과를 키운 농장주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 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비료도 농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죠.” 기무라 씨의 사과는 약을 타기는커녕 약을 단 한 방울도 주지 않은 사과, 즉 ‘기적의 사과’였던 것이다.
아무 것도 주지 않는데 맛까지 기막히다면 왜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연재배를 하지 않는 걸까? 그것은 ‘기적의 사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것은 처절하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한 인고의 세월이었다. 농약을 끊자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들끓기 시작한 벌레들을 잡기 위해 온 식구가 새벽부터 밤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마치 지구를 점령한 벌레 떼에 대항한 인류의 사투를 그린 한 편의 디스토피아 영화를 연상케 한다. 사람의 손이 농약을 대신한 셈인데 그럼에도 가을이 되니 다 떨어진 잎 사이로 다음해 봄에 피어야 할 꽃이 미리 피어버리는 ‘등줄기가 오싹한 광경’이 펼쳐진다. ‘불임’의 자연이 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느꼈다. 사과나무가 다시 꽃을 피운 것은 무려 10년이 지나서였다. 

10년 만에 피어난 사과 꽃
말이 10년이지 기무라 씨는 다시 사과가 열린다는 확신도 없이 어떻게 그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을까? 사실 그는 깨진 독에 물을 붓는 듯한 고통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도 결국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 이 책 <흙의 학교>(기무라 아키노리/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목수책방 펴냄) 맨 첫머리에 나와 있다. 왠지 사람들이 들으면 화를 낼 것 같아서 말하지 못한 이유, 그것은 바로 ‘밭일이 재미있으니까’다. 기무라 씨는 오히려 사과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며 없는 지혜를 짜내어 계속해서 생각하며 매일매일 끊임없이 자연을 새로 발견하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벌레의 마음을 알게 된 농부
<흙의 학교>는 기무라 씨와 일본의 유명 논픽션 작가인 이시카와 다쿠지가 합작해 낸 두 번째 책이다. <기적의 사과>가 기무라 씨의 반평생을 그린 드라마틱한 전기문 형식의 책이라면 <흙의 학교>에는 <기적의 사과>에서 채 담아내지 못했던 기무라 씨의 ‘자연’에 대한 생각과 흙에 대한 그만의 정보가 오롯이 담겨있다. 그의 이야기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정보들이 평생에 걸쳐 오로지 그의 감각과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몇 년 동안 하루도 쉼 없이 벌레를 잡다가 급기야 벌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날씨라면 언제쯤 어디에 어떤 알을 낳겠구나’ 하는 것을 상당히 세밀하게 알게 되었고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벌레 잡는 작업에 드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즉, 기무라 씨 자신이 보다 고성능의 농약으로 진화한 셈이다.
우리가 해충이라 여기는 벌레는 대부분 다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고, 반대로 그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더라는 기무라 씨의 ‘발견’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자연에는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생물이든 모두 다 생태계 속에서 부여받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는 해석에서는 단순한 농부를 넘어선 구도자, 철학자로서의 면모가 엿보인다. 책에는 그가 직접 그렸다는, 귀엽고 깜찍한 모습의 차잎말이 나방 마스코트도 실려 있다. 

기적의 사과나무를 집에서 키우는 팁
뒷부분에는 이 사과나무를 집에서 키울 수 있는 팁도 여러 장에 걸쳐 할애해 원예서적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정도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겐 한 편의 육아서로 읽힐 수도 있겠다. 당장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농약을 쓰듯 공부를 강요하고 비료를 주듯 사교육이라는 처방을 쓰는 것이 옳을지, 아이의 잠재력이라는 사과를 어떤 맛과 모양으로 키워야 할지와 같은 고민들이 문득문득 머리를 스친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귀가 몇 있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 따위의 문장들이다. 여기서 ‘앎’이란 오감을 통한 ‘앎’이며 영혼까지 끌어 모아 다가가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제 글로 배우는 농사는 그만하고 집에서 가까운 텃밭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글을 쓴 박정은은 엄마가 되기 전 방송, 홍보 일을 했다. 지금은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로, 방송대 농학과에서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

CREDIT

프리랜서 작가 박정은

사진제공목수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