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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AS

하얀 국물, 빨간 국물, 라면 시장이 바뀐다

Jadam | 201305

라면 시장의 색깔 전쟁
라면 시장이 다양해지고 있다. 현재 라면 시장의 핫 키워드는 ‘하얀 국물’, ‘빨간 국물’. 지난해 TV 연예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닭 국물로 만든 라면이 주목을 받아 상품화되자 라면 회사들이 앞다투어 하얀 국물, 그러니까 빨간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국물 색이 뽀얀 라면을 출시했다.
신제품 출시로 고심하는 라면 회사와 이슈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 늘 새로운 것을 찾는 소비자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면서 하얀 국물 라면은 순식간에 라면 시장의 아이돌로 떠올랐다. 전 국민이 하얀 국물 라면에 익숙해진 요즘, 라면 회사와 언론에서는 빨간 국물 라면이 다시 뜨고 있다고 호들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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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고춧가루를 빼고 보니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시되고 있는 라면의 종류는 놀랍게도 300여 종에 달한다. 최근 라면 전쟁이 하얀 국물, 빨간 국물이라는 색깔로 단순화되어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라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빨간 국물의 실체는 빨갛고 매운 고춧가루다. 매운 맛은 통증이고 중독성이 강하다. 짠 맛처럼 맵게 먹으면 더 맵게 먹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그리고 매운 고춧가루는 다른 다양한 원재료들이 지닌 상태와 고유의 맛을 슬쩍 덮어버릴 만큼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이를 테면, 매운 낙지 볶음을 먹고 나면 낙지 맛보다는 매운 맛만 혀끝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비해 하얀 국물 라면은 고춧가루의 매운맛 뒤에 숨지 않고 닭고기, 해산물 등 원재료의 맛을 부각시킨 라면이라 할 수 있다.

양념간, 지역에 따라 맛도 천차만별인 일본 라면
라면 국물은 하얀 국물, 빨간 국물이 전부인 걸까. 인스턴트 라면의 탄생지인 일본의 사정은 어떨까.
일본 사람들은 인스턴트 라면보다 맛이 더 생생하고 풍부한 생라면을, 봉지 라면보다는 간편한 컵라면을 훨씬 더 즐겨 먹는다.
일본 라면은 양념간에 따라, 지역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어떤 양념으로 간을 맞추느냐에 따라 미소(일본 된장) 라면, 쇼유(간장) 라면, 시오(소금) 라면이 있다. 미소 라면은 1963년 라면집 ‘아지노산페이’ 주인이 돈지루(돼지고기, 채소, 두부 곤약, 따위를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이는 일본 음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지역으로 나누면 크게 다섯 곳쯤 된다. 삿포로, 규슈, 도쿄, 기타가타, 오사카로 이 중에서도 규슈와 삿포로, 기타가타 라면은 ‘일본 3대 라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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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뼈, 가다랑어포, 뱅어포, 다시마, 채소… 국물
라면의 발상지라는 설이 있는 삿포로의 라면은 춥고 건조한 날씨를 이겨낼 수 있도록 국물이 기름지고 진한 것이 특징이다. 돼지뼈, 전갱이, 말린 날치, 채소 자투리를 넣고 푹 끓인 다음 버터, 닭기름, 라드로 맛을 더한다.
규슈 라면은 하카타가 유명해서 ‘하카타 라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돼지뼈를 기본으로 닭뼈, 가다랑어포, 채소 자투리를 센 불에서 오래 고아 국물이 뽀얗고 진하다. 국물에서 돼지뼈 풍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거북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맛에 중독된 마니아가 생겨날 만큼 인기가 높다.
도쿄 라면은 맑은 간장 맛이 기본이다. 기타가타 라면도 간장 맛이 기본이지만, 돼지뼈와 멸치를 넣어 끓인 국물이 담백하면서도 중후하다. 오사카 라면은 다시마와 뱅어포로 국물을 낸다. 다른 지역보다 짜지 않고 달달하다.

지역 특산 봉지 라면도 있다?
일본에서는 라면 고명으로 마죽 조림, 차사오(간장에 양념해 구운 돼지고기), 숙주, 어묵 외에도 생선, 조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살라미 소시지, 치즈, 마늘, 파, 김치, 교자만두, 구운 김, 삶은 달걀 등의 재료들이 다채롭게 올라간다. 삿포로 라면에는 연어, 옥수수, 감자, 게, 가리비 같은 홋카이도 특산물이 오르기도 한다. 이렇듯 일본 생라면의 종류며 맛은 국물 맛, 면발, 고명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히, 튀기지 않은 생면 형태의 면발과 국물에 들이는 정성이 각별하다. 원하는 국물 맛을 내기 위해 며칠씩 불 앞에서 노심초사하는 일도 흔하다.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 가정식이나 라면 전문점의 인기 메뉴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상품화되는 경우가 많다. 각 지역에는 그곳에서만 판매하는 지역 특산 봉지 라면도 있다.

설마, 기름과 화학첨가물에 대한 추억?!
일본에서 생라면이 대세라면 한국은 봉지 라면의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라면을 많이 먹는 나라는 중국이지만, 1인당 라면 소비량은 한국이 70개로 가장 많다. 우리의 라면 제조기술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쫄깃한 면발에 감칠맛 나는, 혹은 시원한, 진한, 담백한, 얼큰한 국물 맛은 정말 일품이다. 하지만 웰빙 바람을 타고 한때 라면 소비량이 감소하기도 했다. 라면은 20세기 최대의 걸작품으로 불리지만,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여전히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식품으로 꼽힌다. 기름에 튀겨 만든다는 태생적 한계와 스프가 화학첨가물의 보고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다양한 합성 첨가물로 이루어져 있다. 라면 맛에 대한 추억은 어쩌면, 기름과 정체 모를 화학첨가물에 대한 추억일지도 모른다.

이제 제발 ‘맛’있는 라면을 먹어야 할 때!
그렇다면 라면의 이상형은 어때야 할까. 우선 라면을 향한 선입견부터 부숴보자. 이를테면, 몸에 나쁜 줄 알고 먹는 게 라면이라거나, 면은 당연히 튀겨야 한다거나, 라면은 원래 이런 맛이라는 생각들 말이다. 라면을 반드시 튀겨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L-글루타민산나트륨’이라는 단어에는 분노하지만 화학적 합성첨가물이 들어간 라면 국물을 거침없이 들이키는 건 이율배반이다. 국물의 색이 빨간색이면 어떻고 하얀 색이면 어떤가. 뭐가 더 낫고 덜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입맛은 제각각이니까. 중요한 건, 얼마나 좋은 천연 재료로, 되도록이면 논란이 되는 화학적 합성첨가물은 최대한 넣지 않고, 매운맛 뒤에 숨지 않고, 재료 본래의 맛과 영양을 고스란히 살려가며 제대로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다. 라면 전쟁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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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백합조개탕면!
그런 점에서 풀무원 ‘백합조개탕면’의 등장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저 하얀 국물 라면쯤으로 부르면 서운하다. 백합, 바지락 등 스프 한 봉지에 들어간 조개의 양이 무려 46%에 달하는 진짜 ‘조개탕’면이니까. 맛이야 느끼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조개류 특유의 시원함이 잘 살아있다는 반응이다. 조개 외에도 새우, 다시마, 오징어, 미역 등의 해산물이 함께 넣어 국물 맛이 개운하고 담백하다. 여기에 파, 양배추, 양파, 마늘 생강 등의 채소로 깔끔한 맛과 향을, 청양고추로 칼칼함을 더했다. 무엇보다 면을 기름에 튀기지 않고 바람에 말렸기에 ‘백합조개탕면’에 들어 있는 지방은 1.8g, 칼로리는 겨우 350㎉다. 기존 라면과 비교했을 때 지방은 10분의 1, 칼로리는 3분의 2 수준이란다.
살다 보니 이런 봉지 라면을 먹는 순간이 온다. 라면과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이제야 겨우 평소 꿈꾸던 궁극의 라면을 먹게 되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아무튼 오늘부터는 라면 먹을 때 어깨 좀 펴고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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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프리랜서 작가 한정혜

사진톤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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